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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키운 자식

자라면서 부모님에게서 특별히 사랑받았다고 느꼈던 순간은 없다. 오빠와 차별받았던 기억은 간간히 남아있다. 예를 들어 오빠의 해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실현해 주고 나의 해줘는 무조건 나중에였다. 부모님이 나의 도라에몽은 아니지만 내가 딸이고 둘째라고 오빠와 다른 취급을 받은 사실은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다. 나는 그때마다 부모님이 나를 오빠보다 덜 사랑한다고 느꼈고 그로 인해 부모님의 애정을 더욱더 갈구했다. 나는 부족한 만큼의 애정을 받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고 이로 인해 언제부터인가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이 자리 잡았다. 굳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용돈을 달라고 떼를 쓰거나 무언가를 사달라고 떼를 쓰면 마지못해 이뤄주던 엄마의 모습? 어린 나는 항상 부모님에게 애정을 갈구했고 사랑..

주절주절 2024.12.04

골프를 운동이라고 불러도 될까?

고객들을 보면 종종 허리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사람들이 있다.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상태가 이렇게 나쁜데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한숨이 팍 나온다. 고객님들이 병원을 먼저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의사나 물리치료사가 아니다. 고객의 편안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테라피스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현재 그러고 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일한다. 고객님들께 운동하셔야 한다고 병원은 다녀왔냐고 관리 내내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애정 어린 잔소리임을 아는 고객들은 내가 잘해주니까 병원 안 가고 나를 찾아온다고 너스레를 떤다. 당장의 기분 좋은 말에 웃음이 나오다가도 장기적으로 생각해보면 내 앞에 누워 있는 이 한 ..

주절주절 2024.12.03

8_사람으로 치유받다

사람으로 위안을 얻다그 일을 겪고 난 후, 내가 피해자의 모습을 하는 게 싫었다.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데이트 폭행을 당한 약해빠진, 가녀린 피해자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게 싫었다. 김영수를 사귀는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술도 신나게 마시고, 매일같이 놀았다. 정말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술로 잊으려 했다.사람들과의 연결을 놓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 그날 밤의 악몽이 떠올라서 혼자 있기 싫었다.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김영수 썰을 풀었다. 내게는 그저 가벼운 일인 것처럼 얘기했다.“삼 개월 사귀는 동안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역대급 쓰레기를 만났다.”이렇게 말했다.김영수는 내게 그저 술자리에서 웃고 떠들 이야기감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취급..

7_꿈이기를 바라는 현실

김영수네 집에서 나와 곧바로 터미널로 갈 수가 없었다. 김영수가 나를 쫓아올까 봐 두려웠다. 김영수가 살던 곳은 정말 작은 시골동네여서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고작 십 분 거리였다.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는 캐리어를 끌고 터미널까지 가는 십분 남짓한 시간동안에 김영수의 지인들이 운영하는 가게 두 곳을 지났고, 김영수의 지인도 마주쳤다. 김영수가 마음만 먹으면 나를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더욱 불안해졌다. 터미널로 가는 동안 버스를 예약했다. 인천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우선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예매했다. 이마저도 가장 빠른 시간으로 예약할 수가 없었다. 두어 시간 뒤의 버스를 예약했다. 김영수가 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봐 무서워서.   버스시간이 될 때 까지 몸을 숨길곳..

6_도망친아침

주의: 트리거 경고이 글은 데이트폭행과 관련된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글에는 폭력, 협박, 자해 등의 구체적인 상황이 서술됩니다. 특정 내용이 독자에게 심리적 불편함이나 트리거를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글을 읽기 전, 스스로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아주세요.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자라고 나를 깨우는 김영수의 손을 뿌리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눈을 떠보니 거실이 밝아져 있었다.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확인하니 7시 정각이 막 지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을 때가 새벽 4시였으니, 약 3시간 정도 잠든 셈이었다.김영수는 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가 지난밤 그가 던져놓은 내 가방을 들고 나왔다.인기척을 느꼈는지, 김영수도 눈을 떴다. 그는 나를 보며..

5_탈출의 밤

주의: 트리거 경고이 글은 데이트폭행과 관련된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글에는 폭력, 협박, 자해 등의 구체적인 상황이 서술됩니다. 특정 내용이 독자에게 심리적 불편함이나 트리거를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글을 읽기 전, 스스로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아주세요.거실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김영수가 막아섰다. 내 손에 들려있는 가방을 빼앗아 방 안으로 집어던졌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울면서 제발 가지 말라고 내 다리를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너무 지겨웠다. 화내고 울고, 화내고 울고, 고작 세 달 만나는 동안 몇 번째 반복되는 이 짓거리인지. 지겨웠다.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나는 더 이상 받아줄 의향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당장 이 공간에서 나가고 싶..

4_최악의 여름밤

주의: 트리거 경고이 글은 데이트폭행과 관련된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글에는 폭력, 협박, 자해 등의 구체적인 상황이 서술됩니다. 특정 내용이 독자에게 심리적 불편함이나 트리거를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글을 읽기 전, 스스로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아주세요.습도가 높아서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밤이었다. 가만히 누워있는데 땀이 몸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끈적거리는 공기가 코에, 입에, 숨에, 몸에 들러붙었다. 김영수네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창문을 열었는데 더운 바람이 들어와서 시원하기는커녕 더 불쾌했다. 자기가 사는 동네는 산간지역이라 여름에도 시원하다더니, 이 새끼가 하는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짓말이었다.저녁에 시내에서 김영수 친구..

3_처음부터 있었던 경고 신호들

김영수의 행동에는 폭력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전조증상들이 분명히 있었다.첫 번째, 전 연인을 과도하게 비난김영수는 전 여자친구를 과도하게 비난했다. 그는 전 여자친구가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자신을 도발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그는 “합의금을 뜯어내려 했다”, “나는 피해자였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자신을 피해자로 보이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그의 말에 큰 관심이 없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은 덮고, 오히려 전 연인을 철저히 악마화하고 있었다. 이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장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신호였다. 두 번째, 통제적인 태도그는 나에게 화장을 권유하며 “여자는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화장뿐만 아니라, 내 옷차림과 행동..

닉네임, 숨길 것과 드러낼 것

나는 오래전에 봤던 웹툰 작가의 인터뷰를 떠올린다. 오래전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인터뷰에서 들었던 한 가지 주제가 뇌리에 남았다. 작가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 했다.첫 번째는 실명을 사용하는 작가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드러내며 활동한다. 반대로 닉네임을 사용하는 작가들은 자기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그때 나는 단순히 외향적인 사람은 실명을 사용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닉네임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대범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감추고 싶어 하니까 닉네임을 쓴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블로그를 비공개로 운영하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다. 나는 외향적인 성격이다. 이미 외부에서 나를 많이 드러내 놓은 상태이다. 그래서 보여지는 ..

주절주절 2024.11.27

자기검열, 뇌 빼는 위로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는 시즌이 찾아온다. 평소라면 무심히 넘겼을 말들이나, 타인의 시선이 이유 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그런 때. 신경이 곤두서서 주변의 시선에 민감해지고는 한다. 자꾸만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하는 의문이 든다.내가 말을 너무 세게 하나? 내가 이렇게 얘기해도 되나?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친구와 밥을 먹다가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난 귀가 너무 얇은 것 같아. 줏대가 없는 것 같아. 이런저런 말에 자꾸 휘둘려." 고민을 말하는 순간조차도 조심스러웠다.  맞은편에 있던 친구가 내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아 놓고 밥을 입에 넣으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귀 얇은 건 좋은 거야."너무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큰 위로가 됐다. 어이..

주절주절 202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