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에 봤던 웹툰 작가의 인터뷰를 떠올린다. 오래전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인터뷰에서 들었던 한 가지 주제가 뇌리에 남았다. 작가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 했다.
첫 번째는 실명을 사용하는 작가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드러내며 활동한다. 반대로 닉네임을 사용하는 작가들은 자기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단순히 외향적인 사람은 실명을 사용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닉네임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대범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감추고 싶어 하니까 닉네임을 쓴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블로그를 비공개로 운영하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다. 나는 외향적인 성격이다. 이미 외부에서 나를 많이 드러내 놓은 상태이다. 그래서 보여지는 내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내가 내 이름으로 글을 쓰면 고착화된 내 이미지와 내가 가진 생각이 충돌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내 모습과 내가 가진 진짜 생각이 너무 다를 때 그 간극이 충돌한다.
그래서 나는 닉네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닉네임은 나의 또 다른 자아이다. 일종의 부캐가 된다. 닉네임으로 활동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내 이름을 쓰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까 봐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속마음을 밝히는 것도 민망하다. 이런 이유로 닉네임은 나를 방어하는 도구가 된다. 닉네임은 내 사회생활용 이미지와 여기 블로그의 진짜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과거에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힘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숨길 게 많은 사람들인가? 하고 경솔하게 판단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한다. 본인을 한 번 드러내고 나면 감춰야 할 게 더 많아진다. 그래서 닉네임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35살이다. 닉네임 뒤에 숨어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내가 있다.
"숨길 게 많아서 부계정을 쓰는 사람들은 캥기는 게 많아서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찾아가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머리채를 잡고 싸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이길 거다. 나는 언제나 이기는 쪽이니까.
지금 나는 류니라는 닉네임 뒤에 숨어 신나게 말하며 산다.
류니야 고맙다. 나의 든든한 방패.
'주절주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으로 키운 자식 (0) | 2024.12.04 |
---|---|
골프를 운동이라고 불러도 될까? (1) | 2024.12.03 |
자기검열, 뇌 빼는 위로 (0) | 2024.11.26 |
파워에이드 핑크 (0) | 2024.11.26 |
[블라인드]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0) | 2024.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