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돈으로 키운 자식

불주먹 류니쓰 2024. 12. 4. 03:37


자라면서 부모님에게서 특별히 사랑받았다고 느꼈던 순간은 없다. 오빠와 차별받았던 기억은 간간히 남아있다. 예를 들어 오빠의 해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실현해 주고 나의 해줘는 무조건 나중에였다. 부모님이 나의 도라에몽은 아니지만 내가 딸이고 둘째라고 오빠와 다른 취급을 받은 사실은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다. 나는 그때마다 부모님이 나를 오빠보다 덜 사랑한다고 느꼈고 그로 인해 부모님의 애정을 더욱더 갈구했다. 나는 부족한 만큼의 애정을 받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고 이로 인해 언제부터인가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이 자리 잡았다.
 
굳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용돈을 달라고 떼를 쓰거나 무언가를 사달라고 떼를 쓰면 마지못해 이뤄주던 엄마의 모습? 어린 나는 항상 부모님에게 애정을 갈구했고 사랑받고 싶어서 스스로 광대를 자처했다. 부모님을 웃기기 위해 장난스럽게 행동하거나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밝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나의 감정을 숨기고 조잘조잘 수다를 떨거나, 물어보지도 않은 친구들과의 즐거운 일화들을 전달하며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했다. 이 모든 행동은 내면 깊은 곳에서 느끼던 외로움을 감추기 위한 몸부림이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싶어 했던 노력의 일환이었다.
 
지금도 부모님을 만나면 광대의 가면을 쓰고 '나이는 먹었지만 철딱서니 없는 나'를 보여주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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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학교 앞이나 학원 앞에 부모님이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부모님이 아이를 기다리는 모습은 나에게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 순간들이 내가 받지 못한 애정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우리 부모님은 우산을 들고 나를 데리러 오는 대신 택시를 타고 오라며 손에 택시비를 쥐어줬다. 단 한 번도 마중 나온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가족들끼리의 단란한 저녁식사보다는 각자 알아서 사 먹는 저녁이 더 익숙했다. 늦게 퇴근하는 부모님이랑 저녁 시간이 안 맞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해할 수 있다. 졸업식에도 부모님이 와준 적 없다. 장사하느라 바쁘니까.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은 바쁜 일상 속에서 나에게 애정보다는 물질적인 지원을 선택했다. 맞벌이로 인해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던 부모님에게는 이러한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물질적인 지원으로만은 채워지지 않는 감정적인 공허함이 내 마음속에 쌓여갔다. 나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 부족함은 나와 부모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을 만들어냈다. 그 거리감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도 삶이 현실이었을 테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부모님의 물질적 지원만으로는 메워지지 않았던 구멍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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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라온 우리 집에서의 애정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간편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서른 중반이 된 지금의 나도 애정 표현을 돈으로 하는 편이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돈과 시간을 쓰게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돈과 시간을 들인다는 건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이다. 내가 가진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돈과 시간이다. 그걸 내어준다는 건 내 마음을 준다는 의미이다. 거절당한다면 내 마음까지 거절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지만 내가 그렇게 느낀다.
 
내가 누군가를 물질적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돌려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한다. 난 그저 누군가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이건 친구 연인 직장동료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이 누군가를 채워줌으로써 내가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부모님에게 충족받지 못해 내 안에 어딘가 결여되어 있던 부분을, 타인을 채워주는 행위로 인해서 충족하는 걸까? 나는 이걸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걸까? 내 마음이지만 스스로 정의하기 어렵다. 나 스스로도 정의가 안된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려니 더욱 어렵다.
 
나는 사랑을 물질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부모님이 보여주었던 애정 방식이 나에게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부모님이 내게 물질적으로 지원하면서 애정을 표현했던 것처럼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싶다. 하지만 부모님과 나는 다르다. 나는 물질적 지원과 더불어 감정적인 소통을 시도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교감하려는 시도가 나를 조금은 달라지게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아주 조금은...
 
부모님의 방식과 비슷하면서도 동시에 다르다고 느껴지는 그 지점에서 나는 애정과 사랑의 의미를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물질적인 지원은 중요한 애정 표현의 한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감정적인 소통과 이해가 빠져 있다면 그 사랑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아직 내 모든 것을 드러낼 용기가 없다. 그래서 사랑을 시작할 용기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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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성격에 이중적인 면모가 있다고 느낀다. 나는 우울한 면과 밝은 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우울한 모습을 감추고 밝은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에게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우울한 모습을 보였을 때 나를 떠난 사람이 있었고 그것이 나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내 우울한 모습 때문인지 그냥 원래의 나 때문 인지 무엇 때문에 멀어졌는지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와 멀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최대한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울하고 차분한 모습이 원래의 나인 것 같다. 그렇다고 밝은 내 모습이 거짓된 것도 아니다. 이 두 모습이 그냥 나이다. 친한 친구들은 이런 내 성격을 모두 알고 있다. 내 성격의 텐션이 조울증처럼 끝과 끝을 오간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두운 나를 최대한 숨기려 한다. 어두운 면을 보이면 나를 떠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우울증에 대한 낙인이 찍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울증이 뭔지 어떤 병인지 이해 못 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네가 우울증이라고?" 이 말만 몇십 번을 들었다.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지겹다. 그래서 그냥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내 약한 모습을 드러내기 싫다. 병원에 다니는 모습을 감추고 싶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스케줄을 말할 때 거짓말을 하게 된다. 나는 거짓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근데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감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한다. 종종 이런 내 모습이 불편하다. 
 
사람들은 밝은 모습만을 좋아한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진짜 나를 드러낼 용기가 없다. 포장지를 벗겨낸 나를 보여주면 사랑받을 수 있을지 두렵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랑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옆에서 내 편이 되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내가 우울하거나 기쁠 때조차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이러한 바람은 부모님에게서 받지 못했던 감정적인 연결을 갈망하며 생긴 것 같다. 낳아준 부모님조차 감싸주지 못했는데 타인이 나의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이런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에게 내 모든 것을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모든 것을 밝힐 용기가 없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의 내 모습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사랑을 시작하려고 할 때마다 나의 어두운 면을 들키면 상대가 나를 떠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긴다. 이런 불안감이 나를 더 광대처럼 만든다. 내가 더욱더 밝게 행동하게 만든다. 평상시 나와 내 어두운 모습들과의 간극을 더 커지게 만든다. 진짜 나를 드러내기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 나의 모든 면을 받아들여줄 누군가를 만나기를 꿈꾸고 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언제쯤이면 나도 내 우울함과 밝음을 모두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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