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돈면이야기>

6_도망친아침

불주먹 류니쓰 2024. 11. 28. 09:05


주의: 트리거 경고
이 글은 데이트폭행과 관련된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글에는 폭력, 협박, 자해 등의 구체적인 상황이 서술됩니다. 특정 내용이 독자에게 심리적 불편함이나 트리거를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글을 읽기 전, 스스로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아주세요.



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자라고 나를 깨우는 김영수의 손을 뿌리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눈을 떠보니 거실이 밝아져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확인하니 7시 정각이 막 지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을 때가 새벽 4시였으니, 약 3시간 정도 잠든 셈이었다.

김영수는 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가 지난밤 그가 던져놓은 내 가방을 들고 나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김영수도 눈을 떴다. 그는 나를 보며 자기 얼굴이 왜 이러냐면서 누가 그랬냐고 물었다. 모든 걸 기억하면서도 못하는 척하는 꼴이 우스웠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현관을 향해 걸어 나갔다. 김영수가 뛰어와 나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했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내 앞을 또다시 가로막았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대답 없는 나와 길을 막는 김영수의 실랑이는 또, 또, 또 반복되었다.

김영수는 또 울기 시작했다. 김영수의 눈물은 더 이상 나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일으키지 못했다.

만약 내가 우는 사람을 보고 달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김영수 때문이다. 내가 우는 사람을 보고 지겹다는 표정을 짓는다면, 그것도 김영수 때문이다. 내가 우는 사람 편에 서지 않는다면, 그 또한 김영수 때문이다.

눈물이 났다.

이럴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무도 나에게 알려준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인터넷에서조차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다. 내 일이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 “데이트폭행”이라는 자각조차 할 수 없었다.

Q.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더니 셀프로 귀싸대기를 때립니다. 지가 지 손목을 그었습니다. 저를 집에 안 보내줍니다. 저는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당장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김영수에게 등을 돌리고 현관을 바라본 채로 서서 눈물만 계속 흘렸다. 밤새 땀 흘리며 울어서 더 이상 쥐어짤 눈물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 이렇게 많은 수분이 있다는 것을 직접 체감했던 순간이었다.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문 손잡이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갈 수 있었는데, 빌어먹을 김영수가 가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가만히 서서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던 김영수가 입을 열었다.

“밑에 안 보이는 쪽으로 가.”

그 말인 즉, 밑으로 내려가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돌아서 집으로 가라는 뜻이었다.

그는 자기 부모님에게 우리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참 대단한 효자 납셨다.

나는 “알겠으니까 제발 이거 좀 놔”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영수는 내게 본인을 차단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연락하지 않을 테니 차단은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연락은 안 할 건데 차단은 하지 말아 달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기에, 연락하면 바로 차단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카톡을 하거나 전화를 하면, 그 즉시 차단하겠다”고도 말했다.

마침내, 드디어

김영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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