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네 집에서 나와 곧바로 터미널로 갈 수가 없었다. 김영수가 나를 쫓아올까 봐 두려웠다. 김영수가 살던 곳은 정말 작은 시골동네여서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고작 십 분 거리였다.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는 캐리어를 끌고 터미널까지 가는 십분 남짓한 시간동안에 김영수의 지인들이 운영하는 가게 두 곳을 지났고, 김영수의 지인도 마주쳤다. 김영수가 마음만 먹으면 나를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더욱 불안해졌다.
터미널로 가는 동안 버스를 예약했다. 인천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우선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예매했다. 이마저도 가장 빠른 시간으로 예약할 수가 없었다. 두어 시간 뒤의 버스를 예약했다. 김영수가 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봐 무서워서.
버스시간이 될 때 까지 몸을 숨길곳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터미널 앞에 있는 목욕탕으로 갔다. 아무래도 목욕탕은 김영수가 들어올 수 없으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목욕탕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카운터에서 지금은 청소시간이라 입장이 안된다고 했다. 초조한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근처 숙박업소를 검색해서 최대한 가까운 모텔을 찾아갔다. 모텔에 전화를 해서 한두 시간만 있다가 바로 나가겠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굳이 설명할필요도 없었다. 겁에 질린 내가 쓸데없이 말이 많았다.
대실을 하고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숨어 있었다. 허름한 모텔방이 김영수네 집 거실보다 아늑하게 느껴졌다.
침대 위에 누워서 다리를 뻗으니 그제야 쉬는 느낌이 났다. 씻고 싶었지만, 옷을 벗고 가방을 열어서 김영수네 집에서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짐들을 다시 정리할 기운도 없었고,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일단 집으로 가야 한다는 귀소 본능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시간을 딱 맞춰 터미널에 들어갔다. 주변을 살필 틈도 없이 버스로 직행했다. 바코드를 찍고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커튼을 닫았다. 안전벨트를 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분명 김영수는 없었는데, 자꾸만 그가 나를 따라서 버스에 올라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의 잔상이 계속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시동이 걸리고 버스의 진동이 내 몸에 느껴졌다. 버스가 후진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꽉 쥐고 있던 두 주먹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 났다. 움츠렸던 승모근에 힘이 빠져서 어깨가 느슨해지는 느낌이 났다. 이제야 조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버스 의자에 기대앉을 수 있게 자세를 고쳐 앉고 눈을 감았다. 숨이 편하게 쉬어졌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잠깐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기사에서나 보던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뉴스가 아니다. 지독한 현실이다.
길고 긴 악몽 같았던 그날 밤을 복기하며 글을 쓰는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스트레스로 속이 울렁거리고 불면이 생겼다.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타자를 치다가 그날 김영수에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다시 생각나 머리가 어지러웠다.
상처는 옅어질 수는 있지만 흉터로 남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되는 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