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돈면이야기>

8_사람으로 치유받다

불주먹 류니쓰 2024. 11. 28. 10:05

사람으로 위안을 얻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내가 피해자의 모습을 하는 게 싫었다.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데이트 폭행을 당한 약해빠진, 가녀린 피해자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게 싫었다. 김영수를 사귀는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술도 신나게 마시고, 매일같이 놀았다. 정말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술로 잊으려 했다.

사람들과의 연결을 놓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 그날 밤의 악몽이 떠올라서 혼자 있기 싫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김영수 썰을 풀었다. 내게는 그저 가벼운 일인 것처럼 얘기했다.

“삼 개월 사귀는 동안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역대급 쓰레기를 만났다.”
이렇게 말했다.

김영수는 내게 그저 술자리에서 웃고 떠들 이야기감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취급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내가 받은 상처가 덜 아프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이 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싶었다. 마치 술자리의 가벼운 안주처럼, “별일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필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그저 혼자서 이겨내려고 애썼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겪은 일이 나를 상처 내지 않도록 방어기제가 작동해, 스스로 아무 일도 아니라고 여긴 것 같다. 나약한 내가 나약한 나를 지키려고 스스로를 속였다.

술에 취하면 그때의 기억이 흐려지는 듯하다가 친구들을 만나서 김영수를 욕하고, 화도 내고, 억울하다고 얘기하다 보면 그날 밤의 기억이 또렷해지고 점점 더 실감이 나다가 또 술에 취하고 매일의 반복이었다.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사람들이 내 편에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에 댓글을 달며 김영수를 욕하거나 나를 위로해 줬다. 또 누군가는 내가 힘들 때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집 밖으로 끌어내주며 웃게 만들었다. 함께 술을 마시며 분노해 주고, 나를 활동하게 만들어줬다.

그들의 방식은 조금 달랐지만, 내가 받은 위로와 지지는 같았다.

나를 믿어주고,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너져 있던 마음이 조금씩 일어섰다. 내가 다시 움직이고, 무기력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의 믿음과 응원 덕분이었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지만, 결국 사람으로부터 치유받는다. 누군가의 위로 한 마디가,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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