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친구들과 여성인권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같이 노는 친구들은 페미니즘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냥 블로그에 쓴다.
나는 과거에 '흉자'에 '남미새'였는다. 연애를 하다가 발견한 실망스러운 면들을 하나하나 거르게 되면서 남성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남혐하는 수준까지 오게되었다.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애초에 안 만났으면 몰랐겠지만 만나다 보니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하나부터 열까지인걸 어떡하라고. 정말 사랑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건 잠깐일뿐이다. 결국 니들이 등신인걸 어쩌라고. 사랑했다니까?
내 구남친 썰을 들은 아는동생이 '누나는 진짜 남혐 할 만하네요.'라고 말했는데, 그 역시 전형적인 한국남성이다. 이 글을 그 동생이 본다면 개 웃기고 민망할거같다. 하지만 여기에 솔직한 내 생각을 담고 싶었다. 아 쓰면서도 웃기다. 쏘리 맨.
매일 하는 말이지만 '한남'이라는 내 말에 기분이 나쁘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는 거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당신은 그저 한국 남성일 뿐이다. 한 번쯤 스스로를 되돌아보거라 한남들아.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여성인권에 조금씩 깊게 관심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왜 여자는 억압받아야 하는지 왜 억압받아야 했는지를 하나하나 배우고 깨우치는 중이다. 아직도 배우는 중이고 내가 갈 길이 멀다.
성림들이 닦아놓은 길을 열심히 무임승차 해서 걸어가고 있음에 죄송하고 감사하다.
맨 앞에서 다 막아주는 언니는 못되어도 화살이 내 주변 여자들한테 향했을 때 내 쪽으로 어그로 돌려주는 언니 정도는 되어주고 싶다. 현재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친한 친구들은 여성인권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내가 조금씩 세뇌시키는 중이다.
웃긴 짤이나 웃긴 썰을 겸해서 가볍게 풍자적인 개그로 남성 비판적인 내용을 소비한다.
예를 들면 12 한남 같은 거? 니 남친 몇 시 이런 웃긴 짤을 보내주면서 남자 외모 갈라 치기를 한다던가, 키 작으면 오크남, 명품 좋아하면 된장남, 돈 없으면 꽁치남, 여자 뜯어먹는 방울뱀 같은 웃긴 워딩을 알려주면서 남혐을 개그로 승화시킨다.
왜? 기분이 나빠? 그동안 남자들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 주는 것일 뿐인데 뭐 어때.
그런데 정작 사회문제가 터졌을 때는 이에 관해 깊게 대화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나만큼 몰입하지 않는다는 걸 이번 동덕여대일로 느꼈다.
어제 일어나서 트위터랑 인스타에서 동덕여대 사건을 알게 되었다. 출근하면서도 보고 출근해서도 보고 또 보고 계속 봤다. 행동하는 학생들이 너무 멋졌다. 나는 이십 대 때 뭐 했더라? 호주에서 술 마시고 클럽 다니느라 바빴는데.
과잠시위 사진을 보면서 감동받다가 여학생들에게 '아기나 낳으라'고 말한 남성 경찰의 발언을 들으면서 이 사회가 여전히 여성을 애나 낳는 번식 역할로만 보는구나 싶어 깊은 분노를 느꼈다. 여자는 그저 자궁일뿐이구나. 절망스러웠다.
"니가 처 임신해 오메가 새끼야."
나 혼자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심한 감정의 기복을 겪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하루를 보냈다. 인스타와 트위터를 닫고 친구들과 단톡방에 들어가 보니, 갑자기 모든 것이 평온해진 듯 느껴졌다. 세상에서는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지만 친구들과의 대화는 그 모든 불덩어리 속에서 벗어난 듯 평화스러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다. 저쪽에는 난리가 나고 있는데 다른 세상 같았다.
나에게는 친구가 필요하다. 함께 끓어오르는 친구가. 함께 분노할 수 있는 친구가.
지금 친구들이 소중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니까 상처받지 마라 공주들아.
운동하면서 만난 동생 방어.. 음 방어 방어라고 불러야겠다. 운동하면서 만난 동생 방어는 여대생이고 예체능 쪽에서 공부하고 있다. 원래 내 최애는 방어였는데 방어가 공부한다고 지역을 이동하게 되면서 방어와의 만남을 자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방어가 동네 올 때마다 꼭 만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방어 있는 동네로 찾아가기도 한다.
방어가 나보다 7살이나 어리지만 방어는 나보다 어른스럽다. 대화를 하면 생각의 깊이가 나와 많이 다르다. 내가 철없이 생각하고 행동해서 저질러놓은 실수나 행동들 혹은 후회하는 모먼트를 얘기해 주면 가만히 듣고 나서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따듯하게 정리해서 설명해 준다. 위로도 겸해준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여성이 또 어디 있을까?
방어랑 페미니즘 얘기하는 게 너무 좋다. 눈치 안 보고 비판적인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현실에서는 남성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만 방어와 이야기할 때는 그런 눈치 없이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서 좋다.현실 세계에서는 남혐을 하는 것도 눈치 보면서 단계별로 해야 하는데 방어랑 얘기할 때는 그냥 필터 없이 냅다 갈긴다.
아 오해하지 말라고 추가합니다. 남성혐오랑 페미니즘은 완전 다른 개념이니까 혼동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양성평등을 주장하면서 남성을 혐오합니다. 제가 여성우월주의자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여성들은 그냥 평범한 것이고 몇몇 남자들이 매우 열등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네 아빠도 남자라고요? 네 아빠 없습니다.
방어는 작품에 자기 자신을 드러낼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옛날 페미니즘이랑 다르게 요즘은 자신을 드러내면 마녀사냥을 당하는 시대고 방어가 걸어가려는 길에는 방어가 최전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 말했다시피 방어는 예체능 쪽에 있다. 내가 세세하게 말할 수는 없다. 방어를 사랑하고 지켜줄 것이기에.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안타깝다. 선택지는 한정적인데 고민은 수없이 많아 보인다. 방어처럼 먼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짊어진 무게가 나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안타깝고 미안했다. 누군가는 인생과 커리어를 전부 걸어야 하는 일이구나. 그냥 나인 채로 살아가는 게 힘든 일이구나. 가볍게 입 밖으로 꺼낼 만한 일이 아니구나. 나 같은 일반인이 겪는 고민과 걱정의 무게가 차원이 달라 보였다.
방어와 한 번 만날 때마다 생각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나. 어떠한 길을 가더라도 항상 응원하고 연대하겠다고 말했는데 과연 내 말이 큰 힘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내 최애는 방어... 아니... 차애... 최애... 차애... 촤애로 합시다. 사랑하고 연대합니다.
원래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여자로 태어나길 잘한 것 같다. 여자가 아니었으면 연대가 뭔지 몰랐을 거니까. 서로를 감싸주고 지켜줘야 한다는 걸 몰랐을 거니까. 이런 느낌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니까.
게이들끼리의 갈등 상황에서 서로에게 '년'이라는 욕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는 누군가가 말했다. 남성이 여성 비하 표현을 사용하는데 왜 이렇게 관대하냐고. '년'이라는 글자는 이제 N-word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년' 워딩 쓰는 사람한테 편견 있다는 글을 보고 한참 생각을 했다. 여성을 지칭하는 '년'이라는 단어가 왜 혐오의 뜻을 가져야 하는 걸까? 왜 '년'이라는 글자가 '놈'이라는 글자보다 더 비하의 뜻을 가져야만 하는 걸까? 왜 여태 그렇게 사용되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나도 많은 여성혐오 단어를 사용한다. 스스로 인식하는 것도 있고 인지하지 못하는 단어들도 있다. 일하면서 누군가에게 치여 힘든 날에는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속풀이를 한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대상을 물고 뜯는다. 수많은 여성혐오 단어를 사용하면서. 반성한다. 뇌에 힘주겠습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스스로 검열하고 생각하면서 말하겠습니다. 여성혐오 단어 안 쓰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서 나날이 발전해 가는 내가 될 거다.
말이라는 건 정말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 같다. 처음에 한국 남자를 한남이라고 줄여서 말할 때 수많은 남자들이 충격받아서 벌벌 떨던 모습이 기억난다. '한남 묻었다'는 말에 충격받은 유학생이 학교장을 찾아가 항의했던 사건. 너는 한국 남성이 아니냐는 물음에 맞다고 대답했던 개 찌질한 일화. 한국 남자라는 단어가 욕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쾌재를 불렀다.
여자를 혐오하는 단어들은 차고 넘치는데 남자를 혐오하는 단어들은 고작 몇 개를 가지고 부들거리는 꼴이 너무 우습다.
'년'이라는 단어가 여자를 비하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여자를 지칭하는 뜻이 되고, '놈'이라는 글자가 남자를 비하하는 단어가 되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열심히 '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많은 남자들을 우롱할 생각이다.
알겠냐,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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